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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환 장관의 '전략적 모호성', 차기 정부에 폭탄 돌리기?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문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정책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14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김 장관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포함된 원전 2기 건설 계획에 대한 질문에 "11차 전기본이 효력이 있는 한 그 말이 맞다"고 답하면서도, "12차 전기본을 수립할 때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여지를 남겼다. 이는 인사청문회 당시 "신규 원전 건설이 불가피하다"고 했던 발언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장관 취임 이후 공론화 카드를 꺼내 든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오락가락하는 행보는 현 정부가 '탈원전 시즌2'라는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원전 건설 여부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백년대계인 만큼, 정권의 눈치를 보며 결정을 미루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 장관의 모호한 태도는 원전 건설에 필요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고려할 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원전 1기를 짓는 데는 부지 선정부터 완공까지 약 14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 당장 건설을 시작해도 2030년대 후반에나 가동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정부가 11차 전기본을 뒤집고 신규 원전 건설을 백지화한다면, 그에 따른 막대한 사회적 비용과 에너지 수급 계획의 전면적인 재검토는 불가피하다. 반대로 건설을 추진한다면, 하루빨리 부지 선정과 관련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장관은 "12차 전기본을 수립해야 한다"며 시간을 끄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차기 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로 비칠 수 있으며, 에너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김 장관은 자신을 '탈원전주의자'가 아닌 '탈탄소주의자'라고 항변하며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강조했다. 그는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가되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실을 외면한 이상론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기술 수준에서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불가능하며, 원전은 탄소 배출 없이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전의 위험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김 장관이 "0.01%의 위험성이라도 강조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막연한 불안감을 이유로 검증된 에너지원을 배제하고 에너지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것은 국가 전체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한 도박이 될 수 있다.

 

결국 김성환 장관의 '전략적 모호성'은 신규 원전 건설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다음 정부로 떠넘기기 위한 시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탈원전'이라는 이념적 프레임에 갇혀 원전의 필요성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는 의구심도 지울 수 없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단기 처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김 장관은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고,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더 이상의 시간 끌기는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협을 가중시키고, 미래 세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는 정치적 수사가 아닌, 과학적 근거와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